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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Drops of dew/ 화선지에 물감 /40*60/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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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묵상글  검은 먹 위에 빛나는 생명이 피어났다. 이슬 한 방울은 빛보다 더 영롱하고, 작은 꽃 하나는 침묵 속에 피어난 기도였다. 어둠 같은 순간 위에도 하느님은 색을 놓으시고 숨을 불어넣으신다. 🌸 English Poetic Reflection “Life on the Ink” From streaks of ink, life rises— a drop of dew, a silent flower, a leaf holding light. Even in gray,40*60 God breathes color. Even in silence, beauty speaks. 📌 해시태그  ,InkAndDew ,GraceInContrast ,FlowerOnBlack ,SpiritualArt ,묵과이슬 ,생명의그림 ,수묵과자연 ,하느님의색감 ,먹과꽃 ,자연묵상 ,신앙예술 ,그림묵상  

이력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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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 tAEWHA

독수리 날개 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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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고통스럽던  현실이 은총의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해주니 말이다.   여태까지의 글이 성화를 그리신 대학 은사님이신 김영길 교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었는지 (그때 당시는 나는 전혀 깨닫지 못하였었다.) 아마 깨달았다면 교수님이 물고기 그리라고 했을 때 적극적으로 물었을 것이다. 무엇을 나타내어야 하는지 그 물고기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그 그림을  통해 내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이지 그런데 나는 교수님이 설명해 주셔도 못 들은 척 하였으니. 내가 이해 못하고 수긍하지 않는 것을  왜 내가 그려야 합니까 하는 식으로 고집을 부렸으니 말이다.    그 이후 10년이 지난  그것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는 지금에야 그것도 글을 쓰면서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숲속을 걸을때는 숲을 보지 못하고 그 숲에서 나왔을 때 , 아님 산에 있을 때는  산을 보지 못하는 것 같이.  너무 큰 그림들은  가까이 있을 때 볼 수 없고, 멀리 놓고 볼 때 볼 수 있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집을 그림으로 그릴  때 집안에서는 그릴 수 없고 집에서 나와 그것도 멀리 떨어졌을  때 그릴 수 있듯 말이다.   이스라엘 민족들이 하느님의 진노로 유배를 가서 자신들의 역사를 되돌아 볼 때 그 당시에는 보이지 않던  하느님의 손길과 하느님의 마음과 뜻을 그 때야 깨닫는 것 같이 아마 이스라엘 민족이 성경에 쓰여 있는 내용들을 그 당시에 느끼고 깨달았더라면 다르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이것을 생각하면  하느님의 현존을 전혀  느낄 수 없을 때 분별력도 약해지고 정말 생각도 못한 상황에 부딪칠 때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어떻게 발을 내딪어야 좋을지 혼란스러운  때......

소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중 하나일 것 같은 소천(   召 天  ) 부를소 하늘천   오랜 공백 후 다시 그림을 그릴 용기를 가지고  결심을하여 교수님께 메일을 보낸다.   교수님 이제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이 아니라 주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주님이 원하시는 그림, 그리기로 했어요.   답장이 없다. 또 보낸다. 여전히 답장이 없다.   2달 후에 사모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다. " 그 동안 병원에 계셔서 연락이 어려웠다고 김영길 교수님께서 11월 5일 소천 하심을 알립니다. 그동안 제자로써 사랑으로 교제함을 감사드리며. 교수님의 소천이 하나님께 영광임을 감사 합니다.  계속 연락 바랍니다. 성화를 하게 됨을 감사 합니다". 라는 답장이 왔다.   이때 처음으로 소천이라는 단어를 접하였던 것 같다. 이 말이 그렇게 아름답게 들릴 수가 없었다.   하느님께서 교수님을 이름을 부르시며 어서 돌어와 그 동안 정말 수고가 많았다. 교수님은 분명 신나하며  환하게 웃으며 달려가셨을 것 같다.   이 세상에 대해 아무런 미련도 없어 보여셨던 교수님이시기에 오직 하나 관심은 하느님이셨다. 참  희한하게도 사셨던  교수님   그렇게 교수님은 하느님께 절대적이셨다.     #소천 #절대적 #사랑

화가로 계속 살아갈 것인가 ?

  언니가 한국에 왔다가 간지 15일 후  9월14일 한국을 떠난다.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에게 브라질  간 다고 인사하고 교수님들에게도 ............. 김영길 교수님은 고향인 충청도로 이사 가신 상태여서 찿아 뵙지는   못하고 전화로만 인사 드린다.   브라질에 도착하여 다시 안부 전화를 드렸을 때 송무 목사님 찿아가라고 전화 번호 불러 주신다. 그리고 주소 알려 달라고 교수님이 쓰신 책 부쳐 주신다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   브라질을 떠날 때 그리고 쉬고 싶다는 것은   내가 그림을 계속 그릴 것인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있어서 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교수님에게도   더 이상 그림 그리지 않겠다고 협박(?) 교수님은 끄덕도 않으신다. 위로도 격려도 아무 말씀도 않으신다,   브라질에와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다. 언니는 그림그리라고 오라 했는데 그림그리지 않는 다고 .. 하지만 그릴 수가 없었다 내가  왜 그림을 그릴 생각을 했는지!   부모님이 반대하는데도 끝까지 우기면서 미대가고  그때는 그림이 좋아 아침 저녁으로 정신 없이 그림을 그린지 20여 년 그 때 비로소 내가 보인다.   내가 별로 재능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화가들이 대부분은 그렇게 무명으로 살다가 죽고  이름을 알린다 하더라도 죽고서나 . 그 때는  이미  자신의 작품은 대부분 화상들과  부자들에게 가 있고 자식들에게도 가지 않는 경우가  현실인,    투자만 있고 얻는 것이 하나도 없을 수도 있는   나는 그래도 그림을 그릴 것인가   공부도 그런대로 하고 운동도 잘하였는데 왜 나는 별로 잘하지도 못하는 미술을 시작하였는지... 깊은 회의감이 든다   그냥 아이들  ...

하느님의 음성

  브라질에 언니가 계속 전화가 왔다! 브라질로 1년만 여행 오라고, 외롭다고.....작업실도 있고 ,있을 집도 있었다   그런데 전에도 언니하고 얽혀서 좋았던 기억이 없어 자꾸만 망설여 진다. 또 비행기라고는 언니들이 와서 같이 태국 놀러 가 볼 때 다같이 타 본 것이  전부라 두려움이 많이 앞섰다.자꾸 전화는 오고 ..............쪼아는 대고 ...........   나는 철학관을 찿아갔다 . 부산에서 잘한다는 그때는  거금이었던 10만원 주고 서울대 공대 출신이 한다는 곳을 찾아 갔다. 몇 번이나 찿아갔다 가도 좋다고, 그래도 안심이 안되어서 집에 와서 또 전화해 물어 본다 .   그리고는 끊임없이 생각한다.계산한다. 가서 좋은 점과 나쁜점 조그마한 것 까지도 일원짜리까지도 계산한다. 그리고 9월 성당에서  순교자의 달이라   대구 카톨릭 대학교에서 교수님이 오셔서 특강을 하셨다.  나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앉아서도 고민한다 가야 되나 말아야 되나? 그리고 계산한다 손익 관계를    그런데 신부님께서 순교자들에 대해  말씀하시며 동정 순교자들 그 당시 풍습대로  결혼을 하지만,  하느님을 위해 가짜로 결혼 생활을 한  순교자들을 말씀하실 때 문득 내 마음에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     다른 사람들은 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는데 너는  일원짜리하나도 손해 보지 않을려고 하냐?     그것이 내마음 속에 처음으로  들리는 하느님의 목소리 이었다.    나는 순간 너무 부끄러웠다 . 그 동안 나는 이만하면 괜찮게 사는 거지 ! 하며  자부심을 가졌었는데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들리는 순간 너무 부끄러워 쥐 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그리고 눈물이 났다. 부끄럽고 이루 말할 수없는 부끄러움과 초라한 내 모습 일원짜리하나도 손해보지...

B 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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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로써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주신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때에는 보지 못한 주님의 따스한 손길을 이렇게 되돌아 볼 때  볼 수 있게 되어서요. 아님 제가 계속 주님에게  그 힘든 시간들을 -   주님의 시선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세상 것이 다 부질 없음을 철저히 교육 시키시는 시간이었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고달픔의 시간이었듯 그렇게 마음적으로 쓰디쓴 시간이었다, 출애굽하기 위해서는 애굽 생활이 고달파야 했기에 -   허락하신 주님을 원망하고, 그때는 무엇하셨는지 왜 진작 이렇게 주님을 아는 자리까지 이끌지 않았는지,수많은 방황과 힘든  외로운 시간 , 주님을 만나서도 그 시간들이 이해가 되지 않아  아파하였으니 말입니다.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오든 삶들  ~~ 어쨌던 감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합니다.   성적표가 나왔다. 김영길 교수님 수업의 성적이 B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당연한 것도 같은데 그때에는 화가 났다.  교수님께 전화를 걸어 교수님 제 성적이 왜 B 입니까? 항상 교수님은 제 성적에 대해 좋은 점수를 주시지 않았어요 . 어떻게 일학년에서 지금까지 계속 B입니까? 내가 계속 그대로라는 것입니까? 나는 계속 노력하는데 어떻게 계속 ...

네가 내 뒤를 이을 것이다.

  자신의 삶을 되 돌아 보며 글을 써 본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   옛날 대학 다닐 때 영어 수업에서 ``여자와 남자의 언어 사용에 있어서  남자는  그렇다 저렇다 하는 단정적인 말을 사용하지만 , 여자들의 언어 사용은 단정적이지 않는, ~인 것 같다와 같이  완곡한 표현을 사용한다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여기 서두에 있는`` 참 좋은 일인 것 같다``라고 내가 썼지만 내 마음은 정말 좋은 일이다.라고 경탄하고 있으니 말이다.   글을 쓰기 전에는 김영길교수님이 나에게 그렇게 의미 있었던 분이었는지...... 별로 생각하지 못하였다 그냥 존경하고 따랐던 그런데 교수님의 그림 스타일이 내 마음에 들지  않았고 그리고 교수님도 그림에 있어서는  나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아서 주로 다른 교수님이나. 학생들이 칭찬할 때 찬물을 끼얹어주시어  열을 식혀 주시는 분이셔서.............   대학원 수업을 소금의 집에서 하신다고  대학원생들을 소금의 집으로 부르신다. 교수님과 대학원생들이 둘러 앉아 의례하시는 대로 교수님께서  기도로 시작하시고,  교회에 대한 비판적인 말씀들 타락에 대해 말씀하시다가 나에게 물으신다.    태화야 너는 어떻게 신앙 생활을 하게 되었니? 나는 간략하게 중학교 3학년 때 성경을 접하고 예수님께 너무 반해서 성당을 찾아갔고 그리고 몇 개월 뒤에는 고등학교 미션 스쿨에 들어 갔지만 그곳에서도 내가 상상한 예수님이 없어서  ,어른들은 못 믿겠다 내가 찿아야겠다 .하고 실망하여 냉담하였지만, 그래도 하느님은 계신 것 같아 성당은 다니지만 , 겨우 마지못해 다니는...............나는 조금 씁쓸해 하며 말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교수님이 활기를 띄우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신다.   태화는 성실하고 착하고 스케일이 커   ``너가...